2010 창의서밋 세미나 1
2010 창의서밋 세미나 1
날짜
2010년 10월 07일
장소
하자센터 신관 4층 하하허허홀




세미나1 ‘청년들의 창의활동 : 일, 놀이, 삶의 통합’

2010.10.7(목) 오후 2시-5시 / 하자센터 신관 허브홀

왜 한국사회에서는 삶에서의 즐거움과 일에서의 성공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 드물까요.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소위 '21세기 창의산업시대'가 된 지금, 이대로 좋은 걸까요?
2010서울청소년창의서밋의 세미나1 ‘청년들의 창의활동 : 일, 놀이, 삶의 통합’에서는
일과 삶, 노동과 비노동, 성공과 실패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 기준을 바꾸고 있는 사람들의
생생한 인생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 누가 이야기를 하나요?

사회: 김현미(연세대학교 인류학과 교수)
발표: 김승범(제너럴닥터 원장),
최진권(비밥게스트하우스, RECANDPLAY 공동대표),
강소희(대중음악 예비사회적기업 유유자적살롱 팀장),
마츠모토 하지메(시민운동가)
※ 마츠모토 하지메씨는 참가가 취소되셨습니다.

* 누가 이야기를 들으면 좋을까요?

졸업이 코앞이지만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없는 대학 4학년생
(혹은 벌써부터 취업이 걱정인 대학 1~3학년생 및 고등학생)
나는 정말 잘 살고 있는데 남들은 걱정을 해 주는 비업자(非業者) 청년
(혹은 정말 먹고 사는 것이 걱정되는 미취업자 청년)
회사를 다니면서 도저히 사는 것 같지 않은 기분이 들어서 미친 척 하고 평일 날 휴가를 질러보고 싶은 직장인
(혹은 일하는 것과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탐구 중인 사람들 누구나)

* 어떻게 신청하나요?

창의서밋 참가 신청 페이지 (선착순 300명, 참가비 무료)
문의 : 하자센터 기획 3팀 (02)-2677-9200(#202), akii@haja.or.kr

김승범 (병원 제너럴 닥터 공동 대표)

1977년 생으로, 직업은 의사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으며, 2004~2007년까지 3년간 보건소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했다. 2006년 매닉디자인을 설립, 2007년 합정동에 카페 겸 병원인 제너럴 닥터를 열었으며 현재는 홍대 앞으로 옮긴 이 곳의 원장으로 있다. 제너럴 닥터는 고양이 두 마리가 어슬렁거리는 데다, 간판조차 찾아볼 수 없는 병원이지만 이곳에서 조용히 커피를 마시거나 그에게 진료를 받기 위해 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2009년에 그는 이 이상한 병원에 관한 이야기를 모은 책 『제너럴 닥터― 어느 이상한 동네 병원 이야기』를 출간했다.

하나금융그룹 개원 상품 디자인, 유비케어 헬스케어 서비스 디자인, 비타민엠디 서비스 기획 등에 자문으로 참여했으며 한국 존슨앤존슨 타이레놀 마케팅을 진행했다. 의료정책 포럼, 코메디 닷컴 등에 칼럼을 기고했으며 SK 그룹, 메디파트너, 우리들병원 등에서 강연, 테드 서울(TEDxSeoul)에서는 메디컬 디자인에 대해서 발표하기도 했다. 홍익대학교 IDAS 및 기계시스템디자인공학과에서 강의를 한 바 있다.


최진권 (비밥하우스 대표)

1984년생.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전인 2009년, 뜻이 맞는 두 명의 친구들과 함께, 서교동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인 비밥하우스를 열었다. 비밥하우스는 세 명이 한 달에 10일씩만 나눠서 일하자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되었으며 현재 그는 공동으로 대표를 맡고 있다.
인디 뮤지션들의 뮤직 비디오를 만들어, 배포함으로서 라이선스 공유를 실현하고 있는 음악 비디오 블로그인 렉앤플레이(RECANDPLAY), 비디오그래퍼들의 모임인 오프비트(OFFBEAT)에서 멤버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한 번도 진짜 원하는 것을 곧바로 실천해 본 적이 없다고 하는 그는, 뮤직 비디오 만들기도 단지 영화를 찍고 싶다는 소망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아직도 진짜 원하는 것을 위해 이것저것을 해보며 구상하는 중이다.

관련 홈페이지
비밥하우스 http://bebop-guesthouse.com
렉앤플레이(RECANDPLAY) http://recandplay.net
오프비트(OFFBEAT) http://offbeat.co.kr


강소희 (예비 사회적기업 유자살롱 팀장 ․ NEET 대상 프로그램 담당자)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나왔다. 2004년, 2년 가까이 호주를 비롯한 일본, 태국 등 아시아 각지에 걸쳐 살면서 여행을 했다. 2005년 한화 웹진 『오픈 아이』 영화 부문 객원 기자, 2006년 파커 수필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고, 세금 떼고 156만원 획득한다. 2006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디자인 전공으로 입학하지만 이듬해 견디지 못하고 자퇴. 2008년에는 TBWA KOREA에서 카피라이터 인턴으로 일하고, 2009년 소설가가 되기 위해 등단을 준비하지만 또 실패. 같은 해 맥주 회사에서 주최한 수필 공모에서 당선해서 3만원권을 따낸 것이 성취의 전부였다.

2010년, 하자센터 내 예비 사회적기업인 유유자적살롱에 입사. 현재는 히키코모리나 니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음악 프로그램인 미트라이브(MEET-ribe)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희망과 불안 사이를 핑퐁 경기하듯 오가고 있다. 혼자서는 글을 쓰겠다는 결심도 생각도 잘 들지 않아, 지원했던 붕가붕가레코드에 작가로 당당히 합격. 직장이 아닌 곳에서 간간이 글도 쓰고 있다.

인생을 살면서 실패와 좌절, 방황, 소소한 작업 따위를 많이 했고 그게 밑천이자 경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경쟁 사회에서 경쟁해서 이겨야 한다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고, 그런 능력도 없다. 그런 덕에 아등바등 살아가는 온갖 친구들에게 “강소희가 있는 한 그래도 꼴찌가 아니라는” 놀라운 위로를 선사하고 있다.


마츠모토 하지메 (일본, 시민운동가, 『가난뱅이의 역습』 저자)

1974년 도쿄 세타가야(世田谷)에서 태어났으며 현재 재활용가게 ‘아마추어의 반란’ 5호점 점장. 1994년, 호세(法政)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가장 어수룩해 보이는 ‘노숙 동호회’에 가입해 노숙의 기술을 갈고 닦았다. 어렸을 때부터 무전여행에 맛을 들여 대학 생활 틈틈이 종종 무모한 여행을 감행했다. 겨울에 홋카이도를 원동기 붙은 자전거로 여행을 하다 얼어 죽을 뻔하고, 블라디보스토크를 여행하다 마피아에 쫓기고, 중국 국경을 넘다 인민해방군에게 잡히는 등 그야말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인생을 살고 있다.

1996년 ‘호세 대학의 궁상스러움을 지키는 모임’을 결성해 학생식당의 밥값 20엔 인상에 반대해 백 명이 넘는 학생들을 모아 식당에 난입하여 대혼란을 일으켰다. 이 밖에도 ‘일미 군사동맹 강화 반대’ ‘이시하라 신타로 출근 저지’ ‘오픈 캠퍼스 분쇄’와 대학 측의 각종 규제에 반대해 찌개 집회, 맥주 파티 투쟁, 카레 데모, 냄새 테러, 페인트 투척 등을 감행해 대학 당국을 혼란에 빠뜨렸다.

2001년, 거의 수업에 출석하지 않았음에도 학점을 대량으로 받아 반강제로 졸업. 그해 도쿄의 각 지하철 역 앞에서 가난뱅이 집회를 열고 ‘가난뱅이 대반란 집단’을 결성한다. “크리스마스를 분쇄하자!” “롯폰기 힐스를 불바다로!” “이젠 뭔가 보여줄 수밖에 없다!” “가난뱅이가 설칠 수 있게 하라!” 등의 무시무시한 슬로건을 내걸고 공공장소에서 찌개 끓이기, 경찰 바람맞히기, 펑크록과 엔카를 바꿔 틀어가며 경찰의 혼을 쏙 빼놓는 사이에 구호 외치기 등 실로 적들을 혼비백산하게 하는 기발하고도 배꼽 잡는 데모를 결행해왔다.

2005년, 재활용 가게 ‘아마추어의 반란’을 고엔지에서 개점했다. 2007년에는 길목 좋은 데서 데모를 해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스기나미 구의회선거에 입후보해, 무도회 '토크 이벤트' 콘서트 등을 열어 선거판을 가난뱅이들의 해방구로 만들었다. 득표수는 1,061표. 그해 9월 고엔지의 기타나카 거리와 재활용 가게 ‘아마추어의 반란’이 중심이 된 반 PSE 데모, 선거 활동 등을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화 『아마추어의 반란』(나카무라 유키 감독) 완성. 함부르크, 쾰른, 베를린 등 독일의 다섯 도시에서 영화를 상영한다기에 불똥이 더 멀리까지 튀게 하려고 독일을 방문했다가, 차원이 다른 독일 시위대에게 한 수 배우고 돌아와 한층 더 재미있는 반란을 준비하고 있다.
목록으로